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지 3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믿기지 않는 사실을 부정하면서도, 고인의 영상을 보면서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특히 담배를 필 때마다 자꾸 생각이 나서 괴롭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러한 분들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고인이 된 대통령님의 영상을 보면서 '내가 아는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가... ' 하는 생각에 작은 제안을 하나 해봅니다. 제가 적은 글이 꼭 시작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알게 된 대통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릴레이 형식으로 적어주시고 트랙백이라도 걸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노무현 대통령님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첫번째 만남은 부산시장 선거때 입니다. 그 때가 제가 13살때 였습니다. 그 당시 선거에 대한 기억으로는 시장, 구청장, 시의원을 처음으로 투표로 뽑는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부산에 살고 있던 제가 처음 본 것은 기호 2번의 인상 좋은 아저씨였습니다. 청문회 스타, 인권 변호사, 뭐 그런건 알지도 못하던 나이였고 그냥 그 포스터의 미소가 좋아서 '이 사람 참 좋게 생겼다.' 하며 막연하게 '이 사람 뽑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결과는 아시는 대로 낙선이었지만 어느 인터뷰인가에서 했던 말중에 기억나는게 '기호 2번을 달고 이정도 표를 받은것은 당선이나 마찬가지로 생각 하고 더 열심히 하겠다.' 라는 말을 하셧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님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 졌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대통령 경선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대학생이 되던 해라 투표권이 1년 차이로 모자라서 선거를 못하는 나이가 되던 해 두 번째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한창 논다고 바쁘던 대학 새내기라 민주당에서 경선을 하고, 그 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자격으로 명연설을 할 때도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은 '아! 부산시장 출마했다가 낙선한 푸근한 미소를 가진사람.' 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관심을 두게 된 경위가 인터넷을 통해서입니다. 그때 인터넷은 난리였습니다. 한국의 모든 웹의 관심이 이전과는 다른,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고 거기서 노무현 대통령님의 살아온 길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모르고 있었던 역사의 사실에 대해서 알게 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를 바라면서 정치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당시 열렬한 노무현 신봉자가 된 전 투표권이 있는 부모님, 형들 및 아는 사람들에게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 전파하고 다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열렬하게 응원했던 노사모 수준도 아닙니다만...)
선거 당일 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 당시 저는 항상 밤이 되면 2살 위의 형과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삼매경에 빠져 있었고 선거 전날에도 밤을 새우며 PC방에 있었습니다. 슬슬 새벽이 다가오고 투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자 PC방을 빠져나왔습니다. 약 20분 정도를 투표소를 향하면서 형과 헤어지면서 나눴던 대화가 있습니다.
"햄은 누구 뽑을껀데??"
"이회창."
"안된다.노무현 뽑아야 된다."
"마.. 나도 그라고 싶은데 내가 해봤자 안될 사람은 안된다. 그랄꺼면 그냥 될 사람 뽑는게 좋지."
막상 투표소에 도착하자 형은 나에게
"몰라~ 그냥 내가 알아서 할란다."
말을 하고 투표소를 향했습니다. 피곤한 저는 거기서 헤어지고 바로 집에 와서 잠을 잤습니다. 저녁에 다시 만나 누굴 찍었는지 물어봤습니다.
"니 말대로 노무현, 되든 안되든 함 찍어봤다. 되면 되는 거고 안되면 아닌 거지 뭐."
하며 시큰둥하게 말하던 형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날 밤, 결국 이회창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는 모습이 PC방 TV를 통해서 보자, 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사실이 기뻐 신났고, 형은 '이야~ 내가 찍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네!' 하며 웃었습니다.
두번째 대통령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행복한 승리감과 함께 했습니다.
세 번째 만남은 군대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2003년에 의경지원을 한 저는 서울 기동대에서 집회 시위를 전담으로 막는 부대로 배속되었습니다. 입대를 하자마자 부안 핵폐기장을 경험하고, 서울에 올라오니 노동자들이 분신자살을 해서 화염병이 던져지는 생활이 펼쳐졌습니다. 04년도에는 한칠레 FTA로 시작해서 이라크 파병, 탄핵, 김선일씨 사건,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같은 일들이 벌어져서 참 빡시게 생활했습니다. 05년도에는 울산 플랜트 노조의 시위로 크게 다칠뻔하기도 했습니다. 2년 동안 국가가 떠들썩 해서 솔직히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날' 행사 연설에서 '여러분은 항상 국민의 지팡이가 되어야 합니다.' 말해주시던 모습, 농민시위 중 사망하신 분들에 대한 사과 성명을 보면서 여전히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군대에서 사회 일을 겪으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늘었습니다. 사회복지, 노동자 문제, 한미 외교 관계 등 사회현상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다 대통령님 덕분입니다. 이렇듯 군대에서 만난 세 번째 대통령님의 모습은 원망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복잡미묘한 느낌이었습니다.
네 번째 만남은 퇴임이었습니다. 2005년 제대를 하고 제 스스로 생활을 추스르는 동안엔 거의 노무현 대통령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뉴스에서 굵직굵직한 이슈가 나올 때 관심을 두는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짓겠다.'는 말과 함께 봉하마을에서의 모습이 보이고 그래도 5년의 임기 동안 많은 부분을 바꾸어준 대통령님께 감사하면서 앞으로의 퇴임생활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게 좋았습니다. 군대에서 봤던 대통령님의 얼굴은 수척했는데, 고향에서 만난 대통령님의 얼굴은 어린 시절 포스터만 보고 좋아했던 그 푸근한 미소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네 번째 만남은 일반인으로 돌아간 대통령님의 푸근한 미소를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만남은,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월 5월 23일, 그날 밤 9시에 새로 들어가는 생방송이 잡혀 아침 일찍 용산으로 출근했을때 가볍게 뉴스를 보면서 대통령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뉴스사이트와 블로그, TV를 보면서 믿기 싫은 사실을 믿어야 했습니다. '노무현 죽이기'로 물고 늘어지는 현 집권 여당과 그 하수인들의 쑈를 보면서도 '노무현 대통령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는 생각이 확고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막상 이제와서 대통령님이 받아야 했던 수많은 고통과 모욕 그리고 슬픔이 와닿아서 눈물이 흐릅니다.
'민주주의. 정의, 평등'을 외치셧던 분이 스스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라고 쓴 글을 왜 전 이제서야, 읽는 걸까요. 왜 대통령님의 슬픔과 아픔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걸까요....
다섯번째 만남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통령님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나의 글을 남깁니다. 두서가 없고 혼란스러운 글이지만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대통령님을 기억하는 다른분들의 이야기들도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이어가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 하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이야기를 해주셧으면 합니다.' 더욱더 오래, 그리고 다양하게 그분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이 된 대통령님의 영상을 보면서 '내가 아는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가... ' 하는 생각에 작은 제안을 하나 해봅니다. 제가 적은 글이 꼭 시작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알게 된 대통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릴레이 형식으로 적어주시고 트랙백이라도 걸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노무현 대통령님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첫번째 만남은 부산시장 선거때 입니다. 그 때가 제가 13살때 였습니다. 그 당시 선거에 대한 기억으로는 시장, 구청장, 시의원을 처음으로 투표로 뽑는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부산에 살고 있던 제가 처음 본 것은 기호 2번의 인상 좋은 아저씨였습니다. 청문회 스타, 인권 변호사, 뭐 그런건 알지도 못하던 나이였고 그냥 그 포스터의 미소가 좋아서 '이 사람 참 좋게 생겼다.' 하며 막연하게 '이 사람 뽑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결과는 아시는 대로 낙선이었지만 어느 인터뷰인가에서 했던 말중에 기억나는게 '기호 2번을 달고 이정도 표를 받은것은 당선이나 마찬가지로 생각 하고 더 열심히 하겠다.' 라는 말을 하셧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님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 졌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대통령 경선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대학생이 되던 해라 투표권이 1년 차이로 모자라서 선거를 못하는 나이가 되던 해 두 번째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한창 논다고 바쁘던 대학 새내기라 민주당에서 경선을 하고, 그 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자격으로 명연설을 할 때도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은 '아! 부산시장 출마했다가 낙선한 푸근한 미소를 가진사람.' 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관심을 두게 된 경위가 인터넷을 통해서입니다. 그때 인터넷은 난리였습니다. 한국의 모든 웹의 관심이 이전과는 다른,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고 거기서 노무현 대통령님의 살아온 길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모르고 있었던 역사의 사실에 대해서 알게 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를 바라면서 정치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당시 열렬한 노무현 신봉자가 된 전 투표권이 있는 부모님, 형들 및 아는 사람들에게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 전파하고 다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열렬하게 응원했던 노사모 수준도 아닙니다만...)
선거 당일 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 당시 저는 항상 밤이 되면 2살 위의 형과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삼매경에 빠져 있었고 선거 전날에도 밤을 새우며 PC방에 있었습니다. 슬슬 새벽이 다가오고 투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자 PC방을 빠져나왔습니다. 약 20분 정도를 투표소를 향하면서 형과 헤어지면서 나눴던 대화가 있습니다.
"햄은 누구 뽑을껀데??"
"이회창."
"안된다.노무현 뽑아야 된다."
"마.. 나도 그라고 싶은데 내가 해봤자 안될 사람은 안된다. 그랄꺼면 그냥 될 사람 뽑는게 좋지."
막상 투표소에 도착하자 형은 나에게
"몰라~ 그냥 내가 알아서 할란다."
말을 하고 투표소를 향했습니다. 피곤한 저는 거기서 헤어지고 바로 집에 와서 잠을 잤습니다. 저녁에 다시 만나 누굴 찍었는지 물어봤습니다.
"니 말대로 노무현, 되든 안되든 함 찍어봤다. 되면 되는 거고 안되면 아닌 거지 뭐."
하며 시큰둥하게 말하던 형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날 밤, 결국 이회창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는 모습이 PC방 TV를 통해서 보자, 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사실이 기뻐 신났고, 형은 '이야~ 내가 찍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네!' 하며 웃었습니다.
두번째 대통령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행복한 승리감과 함께 했습니다.
세 번째 만남은 군대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2003년에 의경지원을 한 저는 서울 기동대에서 집회 시위를 전담으로 막는 부대로 배속되었습니다. 입대를 하자마자 부안 핵폐기장을 경험하고, 서울에 올라오니 노동자들이 분신자살을 해서 화염병이 던져지는 생활이 펼쳐졌습니다. 04년도에는 한칠레 FTA로 시작해서 이라크 파병, 탄핵, 김선일씨 사건,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같은 일들이 벌어져서 참 빡시게 생활했습니다. 05년도에는 울산 플랜트 노조의 시위로 크게 다칠뻔하기도 했습니다. 2년 동안 국가가 떠들썩 해서 솔직히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날' 행사 연설에서 '여러분은 항상 국민의 지팡이가 되어야 합니다.' 말해주시던 모습, 농민시위 중 사망하신 분들에 대한 사과 성명을 보면서 여전히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군대에서 사회 일을 겪으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늘었습니다. 사회복지, 노동자 문제, 한미 외교 관계 등 사회현상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다 대통령님 덕분입니다. 이렇듯 군대에서 만난 세 번째 대통령님의 모습은 원망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복잡미묘한 느낌이었습니다.
네 번째 만남은 퇴임이었습니다. 2005년 제대를 하고 제 스스로 생활을 추스르는 동안엔 거의 노무현 대통령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뉴스에서 굵직굵직한 이슈가 나올 때 관심을 두는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짓겠다.'는 말과 함께 봉하마을에서의 모습이 보이고 그래도 5년의 임기 동안 많은 부분을 바꾸어준 대통령님께 감사하면서 앞으로의 퇴임생활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게 좋았습니다. 군대에서 봤던 대통령님의 얼굴은 수척했는데, 고향에서 만난 대통령님의 얼굴은 어린 시절 포스터만 보고 좋아했던 그 푸근한 미소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네 번째 만남은 일반인으로 돌아간 대통령님의 푸근한 미소를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만남은,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월 5월 23일, 그날 밤 9시에 새로 들어가는 생방송이 잡혀 아침 일찍 용산으로 출근했을때 가볍게 뉴스를 보면서 대통령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뉴스사이트와 블로그, TV를 보면서 믿기 싫은 사실을 믿어야 했습니다. '노무현 죽이기'로 물고 늘어지는 현 집권 여당과 그 하수인들의 쑈를 보면서도 '노무현 대통령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는 생각이 확고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막상 이제와서 대통령님이 받아야 했던 수많은 고통과 모욕 그리고 슬픔이 와닿아서 눈물이 흐릅니다.
'민주주의. 정의, 평등'을 외치셧던 분이 스스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라고 쓴 글을 왜 전 이제서야, 읽는 걸까요. 왜 대통령님의 슬픔과 아픔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걸까요....
다섯번째 만남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통령님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나의 글을 남깁니다. 두서가 없고 혼란스러운 글이지만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대통령님을 기억하는 다른분들의 이야기들도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이어가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 하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이야기를 해주셧으면 합니다.' 더욱더 오래, 그리고 다양하게 그분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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